셴젠 – 중국의 실리콘 밸리

제가 처음으로 중국산 스마트폰을 사용해봤던 것이 2015년이었습니다. Elephone P3000s부터 홍미 노트 3/4/5, 화웨이 P10, 포코폰 F1까지니까 나름 중국산 스마트폰 품질이 조악하던 시절에서 점점 발전하는 모습까지 직접적으로 체험해봤다고 생각합니다.

특허나 공정무역과 같은 윤리적인 부분을 잠시 덮어두고 생각하면 몇 년 사이에 중국산 전자기기들의 품질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경색된 한-중 관계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중국산 제품을 깎아내리고 무시하기 바쁘지, 왜 중국이 빠른 시간 내에 기술력을 확보하게 됐는지, 그리고 정확히 어떻게 가격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죠.

저도 중국산 제품을 많이 사용해왔기 때문에 당당하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중국한테 밀리지 않으려면 무작정 무시하기보다는 중국의 경쟁력에 대해 분석하고 이해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분명 논란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도 분명 각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중국 제품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목차 ]

1. 셴젠의 발전 과정

2. 제조업의 메카

3. 특허 제도의 명과 암

4.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셴젠의 발전 과정 ]

1970년대 후반, 중국 정부는 공산주의의 성장 한계를 느끼고 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자유경제 체제를 일부 도입한 특별 경제구역을 설정하게 되는데, 셴젠도 그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잠시 시점을 미국의 실리콘 밸리로 옮겨보면 1980~90년대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실리콘 밸리의 전설을 써 내려가던 시절입니다.

빠른 속도로 컴퓨터가 보급되고 있었고,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물량의 부품들이 필요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부품 제조사들은 인건비가 저렴하고 최근에 특별 경제구역으로 지정된 항구도시 셴젠에 몰리게 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셴젠은 1981년부터 1993년까지 연평균 40%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일 정도로 빠르게 발전해나가게 됐습니다. 고작 인구 3만 명 밖에 되지 않았던 어촌에 공장들이 들어서게 되고, 많은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흘러들어오게 됐죠.


[ 제조업의 메카 ]

모든 전자기기 부속품 생산 공정을 한 장소에 몰아넣은 까닭에 셴젠에서는 만들지 못하는 부속품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렴한 인건비 덕분에 대부분의 제조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죠.

이로 인해 셴젠에는 수준 높은 기술과 제조 공정에 대한 이해도를 지닌 사람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또한 셴젠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2세대들은 어릴 때부터 납땜이나 코딩과 같은 작업이 생활화될 정도의 수준이라고 하는군요.

이런 인프라가 갖춰지고 2000년대 후반에 스마트폰 혁명이 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셴젠에는 벤처 붐이 생기게 됩니다. 물론 초창기 제품들은 품질관리 기준도 없었고 재활용된 부품 위주로 조악하게 제조하는 수준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경쟁력 있는 기기를 만들고자 하는 업체들이 하나둘씩 생기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현지에서 바로 부품을 수급 받아서 프로토타입을 제조해볼 수 있다는 독특한 유통환경을 십분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스마트폰 개발 주기가 1년이라고 하는데, 셴젠에서는 설계부터 테스트, 최종 대량 생산 과정까지 3~4개월 만에 이루어진다고 하네요. 게다가 중국은 엄청난 규모의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실험적인 제품도 거침없이 만들어낼 수 있어서 창의력을 발휘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무대였죠.

덕분에 셴젠의 벤처기업들은 제품 개발 과정의 시행과 착오를 단기간 내에 누구보다 많이 겪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기술력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보수적인 대외 정책으로 인해 셴젠의 벤처기업들은 “특허”라는 허들을 넘을 필요가 없다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였죠.


[ 특허 제도의 명과 암 ]

셴젠 시민들에게는 중국의 하이테크 기술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이로 인해 신기술을 자국민에게 빨리 보급하려고 하는 특유의 사명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연스레 벤처 기업가와 그 밑에서 일하는 개발자들 모두의 열정이 엄청날 수밖에 없었죠.

물론 중국 자체가 특허권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 환경이긴 하지만, 셴젠에서는 기술의 발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신기술을 오픈소스 형식으로 공개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당연히 누군가가 이를 모방한 제품을 만들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혁신을 하고 품질을 높여야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됐죠. 아마 중국 정부도 특허권 무시가 이런 순기능을 가져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거 같긴 하지만요.

특히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 제조사들의 혁신을 위한 노력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노치를 최소화, 디스플레이 내장 지문인식 센서, 듀얼 액정과 같은 기능들이 대표적이죠.

과거 중국 스마트폰들은 저렴하고 스펙이 좋은 대신 마감과 소프트웨어에서의 노하우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지만 이제는 해당 부분들도 많이 보완된 상태입니다.

비록 시작은 특허를 피한 카피캣에 불과했지만 요즘 출시된 기기들을 보면 이제는 중국 제조사들도 오랜 세월 동안 살인적인 개발 사이클과 특허 없는 무한 경쟁 환경에서 이룩해낸 “실력” 요소도 있다는 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번 조사를 하면서 기술의 개발을 독려하기 위한 특허권이 요즘에는 오히려 독점을 부추기고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특허권이라는 것은 정말 굵직한 기술에만 적용해야지, 버튼의 위치가 어디이며, 테두리 곡률이 얼마이고, 아이콘 색상은 뭐고 같은 자잘하고 치졸한 특허는 조금 제한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이건 저 혼자만의 망상이겠죠.


[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위의 내용을 조합하면, 셴젠이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3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

1) 부품 생산 현장이고 내수 시장이 크기 때문에 빠르고 실험적인 개발 사이클이 가능함

2) 셴젠 기술자들 특유의 자부심, 사명감으로 인한 열정적인 개발 환경 조성

3) 특허의 부재로 인해 끊임없는 기술의 발전이 강요

물론 아직은 특허 문제 때문에 국제 시장에서의 움직임이 제한적이지만, 거대한 중국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이미 충분히 성장을 한 상태이고, 현재는 특허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인도에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제조사들과 승부를 펼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기존의 애플, 삼성이 스마트폰 업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지만 인도 시장에서마저 밀려버린다면 향후 전망은 매우 불투명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저렴하고 성능도 괜찮은 중국 브랜드들이 인도 시장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니 매우 걱정되네요.

사실 가격적으로는 중국 제조사의 인프라를 따라가기는 힘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쉽게 따라 하기 힘든 신기술 개발이나 소프트웨어를 통한 생태계 구축 정도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유출되고 있는 고급인력들을 붙잡는 것이 관건일 것 같네요.

인재 유출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얘기는 별도의 토론장(콜로세움)이 필요할 정도의 주제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천연자원 하나 없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가 결국 하이테크 산업과 소프트웨어 분야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 상태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많이 어둡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은 드네요.


저도 가끔 중국 전자기기를 구매하지만 한국 기업이 성장해야 제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살기 좋아진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국내 기업들이 어떻게든 경쟁력을 유지했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중국 제조사들의 성장 배경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무시하기만 하는 태도는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제에 넘는 주제를 선정하게 됐네요. 부디 중국의 기술력을 우습게 보는 분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포스트가 됐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중국을 경외시하거나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중국과의 경쟁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제 현실이고, 경쟁자를 깔보는 자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는 이웃나라의 과거를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저도 중국산 제품을 많이 사용해왔기 때문에 당당하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중국한테 밀리지 않으려면 무작정 무시하기보다는 중국의 경쟁력에 대해 분석하고 이해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5년 전에 윗 글을 봤다면 무시했겠지만, 지금은 격하게 공감합니다.

    한국만 조사 해봐도 중국 제품 안 쓰는 곳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혹자는 미국이 중국 제품 노예시장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나마 미국이니 저 정도지, 한국은 이미 중국 없으면 못산다고 봅니다.

    거의 전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제 거주지 변두리에 심심찮게 보이던 중국 점포들이 어느새 시장의 노른자 땅으로 진출 했습니다)

    돈이 안 되는지 금융사 쪽은 덜한 것 같습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금융사가 적다는 것이지 자본시장의 금력은 다를 것 같습니다)

    게사장님은 본문에서 경쟁이라 표현했지만, 저는 경쟁이란 단어를 빼고 생존을 향한 발버둥 (파랑새 찾기)이라 쓰고 싶습니다.

    인재유출 방지 방법은 없습니다. (이 주제로 토론할 여지는 없다 생각합니다 근거는 미국 혹은 서양권 이민 이유와 다를게 없습니다)

    한국의 성장은 일본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도둑질로 이루었습니다. (일본도 훔쳐 먹은게 있으니 강하게 꼬집지 못하는 것입니다)

    꼭 같지는 않지만 중국도 비슷한 방법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비슷한 방법으로 성장한 중국을 욕합니다.

    소위 선진국이란 것들도 도둑(강도)질로 Title을 강점(强占) 했습니다.

    한국 스스로 죽지는 못하니 살기는 해야겠고, 결말은 정해져 있지만 피할 수는 없는… 그저 육식동물을 피해 숨어다니며 요행이라도 자연사를 염원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초식동물 같은 삶이 남았을 뿐입니다.

    국제관계나 자본주의 체제의 격변 혹은 대행운이 없다면 한국은 필멸(必滅) 됩니다.
    (생존을 위해 노력 해야겠지만 한국의 노력은 생존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이는 한국의 탄생 배경을 보시면 비슷하다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쓴 글을 보고 비관론자라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실상 방법 없습니다.

    부디 제 무지 (ignorance) 로 인한 편협한 가설이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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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테크리뷰의 주 편집자. 눈으로 보이는 데이터를 통한 객관적인 판단을 좋아하는 노트북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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